트렌드 이야기
평범함 속의 사치, 노멀 럭셔리의 종착역 킨포크 라이프


지난 2014년 유흥, 사치업 부문의 신용카드 지출 현황은 1조 5,920억원으로, 전년 동기 1조 7,084억 원보다 6.8% 낮아졌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부자들이라고 하면 명품을 구매하고 골프를 치며 수입 자동차를 몰고 유흥업소에 출입하는 사람들이었는데요. 그 부문에서 소비가 줄었다고 하는 것은 오늘날 사치가 과거의 소비 패턴과 질적으로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변화의 배경은 무엇일까요? 대표적으로 산업시대에서 정보/문화 시대로의 변화, 세계화로 인한 정세의 가변성, 그리고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기점으로 한 세계적인 경기 침체 기조와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각박할수록 여유로움에 대한 갈망은 커지는데요. 시대마다 나름 문제는 있었지만, 요즘처럼 경제 문제가 심각하거나 사건 사고가 많이 터지는 때도 없었던 것 같거든요. 평균수명이 늘면서 정년과 금리의 하락으로 노후 또한 불안함을 가중시키는 요인 중 하나가 되고 있죠. 



이런 불안과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상태가 바로 여유인데요. 시대의 변화로 인해 과거와 달리 이제는 각종 스트레스로부터 자율로울 수 있는 '여유'가 바로 최고의 사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과거 비싼 명품 하나 장만하느라고 허덕이던 태도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찾고 삶의 여유를 누리는데 사람들이 투자를 하기 시작하고 있는 겁니다. 불안과 과잉의 시대에 물질보다 감성 사치 측면이 강화되고 있는 거죠. 이제 사람등은 명품백이나 고급 자동차보다, 평일 낮술의 여유와 유유자적한 일상의 우아함을 동경하고 있습니다. 


킨포크 라이프


사치의 아이템이 명품처럼 브랜드 있는 물건에서 장소, 음식, 운동, 사람 등으로 폭넓게 영역을 넓히고 있는데, 그 삶의 양식을 대표하는 단어가 바로 킨포크입니다. '가깝고 친한 사람'이라는 뜻인데요. 킨포크는 2011년 미국 포틀랜드에 사는 한 남자의 블로그에서 시작되어 작가, 화가, 농부, 사진작가 등 40여명이 모여 만든 작은 모임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텃밭에서 재배한 식재료로 '스트레스 없는 요리'를 만들고, 그 음식을 함께 나눠 먹고 조리법을 공유하면서 느긋한 삶을 추구했는데요.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잡지 <킨포크>가 전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키며 느긋한 삶의 기쁨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의 대명사가 된 거죠.



우리나라에서도 웰빙 붐과 함께 킨포크 라이프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는 듯 합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팽배한 불신과 여러가지 사건 사고들로 가족과 함께 하는 삶, 자연과 교감하는 삶이 어느 때보다 중요시 되고 있죠. 소박하지만 여유로운 일상에 대한 가치가 더욱 증대되고 있는 겁니다.


안타깝게도 실천은 쉽지 않습니다. 텃밭 재배 하나만 해도 도시인에게 쉬운 일이 아니죠. 현실이 그와 같으니 미국에서 느긋하고 감성 충만한 삶을 살고자 시작되었던 킨포크 라이프가, 한국에서는 평범하지 않은 럭셔리한 삶의 상징이 되어 버렸습니다. 일상에서 여유를 누리며 사는 것이 사치가 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트렌드를 반영하듯, 롯데백화점은 2014년 가을 킨포크와 관련된 강의를 전년 대비 세 배 이상 늘렸습니다. 본점과 잠실점에서는 채소를 직접 가꿔서 먹을 수 있는 '베란다 채소밭 가꾸기' 강좌를 마련하기도 했고, 건강한 집밥 만들기 등의 강좌로 킨포크족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습니다. 현대 백화점 역시 음식 명인과 함께 식재료 산지를 직접 찾아가 설명을 듣고 건강한 밥상을 체험할 수 있는 강좌를 개설했습니다. 일상을 우아하게 돌아보자는 킨포크 정신이 생활문화 전반에 퍼지고 있는 것이죠.


우아한 평범


평범한 럭셔리에 대한 동경은 여성들 몸매 관리 트렌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하는 유산소 운동과 달리 요즘은 필라테스가 유행하고 있는데요. 필라테스는 재활 목적으로 만들어진 운동인데, 이미 날씬해진 사람들이 몸매를 가꾸는 용도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덕분에 필라테스는 자신을 관리할 줄 아는 여성, 즉 생활에 여유가 있는 여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기도 하죠. 



문명의 진보는 줄곧 인간을 이롭게 한다고 믿어 왔습니다. 특히 의학과 IT 기술의 발달은 우리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고 굳게 믿어왔죠. 그러나 우리 육체와 정신은 그 변화를 따라가느라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피폐해져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여유에 더욱 집착하게 되었고 그 반작용으로 킨포크 라이프가 하나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모든 극단적인 것은 중용으로, 작위적인 것은 순리로 돌아가는 것 같네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오늘 저녁은 킨포크 라이프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2015. 8. 31. 11:03